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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샤의 연성용 블로그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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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8
    시간여행

째깍.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눈을 떴다. 낡은 필름속에 잠긴것처럼 남자가 도착한 세상은 흑백으로 가득차있었다. 또한 세상은 새하얬다. 테두리와 외곽을 살폈을때야 겨우, 자신이 있는 곳이 이제껏 익숙했던 저택의 숲임을 깨달았다.
남자는 이곳에 오기전, 여자가 자신에게 쥐어준 손목시계를 흘긋 보았다. 시곗바늘은 팽글팽글, 반대로 회전하다 이내 원래대로 제 방향을 찾아 움직였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내가 원하는 대가를 요구할거야.'

그는 반신반의하며 승낙했을터였다.
춥다. 입김을 내뱉자 뿌연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발을 내딛자 뽀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기가 스며올라왔다. 햇빛을 받아 더 아름답게 아스라지는 백금발에도 눈이, 제자리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전까진 분명, 여자와 단둘이 있던 바였는데.


조금 걷자, 남자의 코발트 눈동자가 커졌다. 단한번도 이런 미신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은 믿은적이 없었다. 그가 비록 카톨릭신자였다 하더라도,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여자의 말을 흘려들었던 터였다. 그래. 눈앞에 지나가는건.


조금 짧은 백금발. 고급스러운 재질이지만 저에겐 좀 큰 검은 코트를 입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그제야 남자는 여자의 말이 실감이 났다. 최면일까? 그러기엔 너무 생생한 세계였고, 자신이라 생각되는 저 어린 청년이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기억을 담당하는 어딘가에 이 순간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남자는 곧장, 그 어린 청년의 뒤를 조심스레  쫓았다. 이 기억대로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그 순간이 맞다면. 이 다음은 분명.


"여기서 뭘하는거죠? 이곳은 들어오면 안되는데."


자신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어린 청년 역시도.청년과 남자의 시선은 저절로 앞에 있는 상대를 향했다. 자신보다 조금 작지만 훤칠한 사람은 두손으로 들고있던 쇠뇌를 등에 매곤 후드를 벗었다.


가장 눈에 들어온건, 시선을 휘어잡는 아름다운 눈의 색깔이었다. 짙은 녹색빛을 띄는 눈은 침엽수가 울창한 숲이 떠올려졌는데, 나뭇가지들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햇빛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그 다음은 자신보다 훨씬 큰 검정색의 가죽 무스탕.


너무 커서인지 소매부분을 두어번 접어올렸고, 두툼한 상반신에 비해 다소 말라보이는 하반신. 여자는 후드때문에 붕붕 뜬 머리카락을 가라앉히려 했는지, 제 머리를 두어번 크게 흔들었고 그에 따라 아래로 땋아내린 갈색 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 왜?"

"사유지니까. 정식으로 계약을 한 사냥꾼인가?"

"아니."

"외부인은 출입금지야. 소란스러운거 싫으니까 그냥 나가지 그래."

"여기가 사유지인 근거가 뭔데?"

"내가 이곳에 있다는게 근거야."


"그럼 네가 이곳에 없으면 난 사냥을 해도 된단 얘기겠네. 이곳에서 눈감아주던가, 사라지던가를 골라."

소녀는 앳된 목소리로 그리 답했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고,어린 청년은 인상을 굳힌채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여자가 잡아끄는 손길에 입을 다물었다.


어린 청년은 손길에 이끌려 소녀의 뒤로 자리를 잡았고 여자는 등에 매고있던 쇠뇌를 꺼내 숨을 고르곤 한 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그녀가 바라보는 곳엔 조금 큰, 토끼한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쇠뇌의 방아쇠를 당긴것과 화살이 토끼의 눈을 맞춘건 동시.


그녀는 일상 있던 일이라는듯 당당하게 이미 심장이 멈춘 토끼에 다가가 뒷작업을 빠르게 마무리지었다.


째깍째깍.


남자가 차고있던 손목시계에서 초침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니면 나를 정식 사냥꾼으로 계약시켜줘. 그럼 되잖아?"
그녀는 뻔뻔할정도로 당당한 얼굴을 한 채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두어번 퉁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지?"
"레이아 칼라스. 그쪽은?"
"테오도르 막시멈."


초침소리가 멈췄다. 남자는 원래 있던 바의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꿈? 그러기엔 신발과 머리가 촉촉했고, 코트엔 눈이 녹아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있었다. 시계를 끌러 확인했다. 시계는 그것이 시간을 보는 도구였을거라고 상상하지 못할정도로 깨져있었다.


눈앞의 보랏빛 머리를 가진 여성이 천으로 유리잔을 닦다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눈빛에서 공허함만을 읽었던 그녀가, 그 이상의 감정을 읽었던것은 처음이었다. 남자는 평소보다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가능하다고요? ...반신반의했지만."


"짧은 과거로의 여행은 어땠니, 테오도르?"



"하.. ....이건 말도 안될정도로. ..엄청나네요."


"그럼 대가를 지불해야지. 넌 뭘 보고왔지?"


"..그건 왜 물어보시죠?"


"시계가 견딜 수 없을정도로 행복한 추억에 잠겼나 보구나. 깨져있네."


"...별건 아니에요, 레인블랙. 그냥 어릴적의 추억정도."


" ...정말?"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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